안녕하세요 에어특공대 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수미네 반찬이라는 책인데요
레시피북이라는 말처럼 책처럼만 하면 마법의 요리를 만들수 있을 것만
같네요 ㅎㅎ
레시피는 차차 알려드리고
이번은 책 소개부터 드릴께요
김수미님이 여경래님과 최현석님 미카엘님 아쉬미노프님과
TVN에서 요리 방송 했던 거 기억 하실꺼에요
거기 소개 됐던 요리? 들을 책으로 내신거 같아요
저도 남자라 요리는 잘 모르지만,
집사람이 구매한 이 책을 보고 요리를 한다면
엄~~청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ㅎㅎ
서문 내용을 적어볼까 합니다.
마지막이 작성자에 가슴이 조금 찡했는데요
한번 올려볼까 합니다 ^^
음식은 내게 그리움이자 설렘이다
나는 오늘도 요리를 한다. 요리를 대접하는 대상은 늘 다르지만, 내가
만든 모든 음식을 빠짐없이 맛보는 단 한 사람이 있다.
'김화순'.
내 나이 열여덟, 당신의 어린 딸을 위해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밭에
서 열무를 뽑다 작고한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의 이름이다.
'꽃 화花'자, '순할 순順' 자의 이름 그대로 꽃같이 아름다웠던 어미
니는 내가 음식을 만드는 이유다.
어린 시절, 나는 꽤나 영특한 아이였다. 비록 으리으리한 빌딩보다
허름한 초가집이 많고, 세련된 신사 숙녀보다 말 못하는 소와 돼지가
많던 시골 마을에ㅐ서 자랐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성적이 제법 좋았던 내가 퍽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 내
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황토고구마가 나오는 널쩍한 고구마 밭
을 몽땅 팔아 서울로 유학을 보냈던 까닭이다.
서울에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주인집 눈치를 보며 살던 10대 소녀
는 항상 배가 고팠다. 종종 어머니가 바리바리 음식을 싸들고 자취방
을 방문했지만 대부분 냄비 밥에 신 김치를 반찬 삼아 끼니를 해결해
야 했기에 늘 맛있는 음식에 대한 갈증에 허덕였다.
유난히 딸을 끔찍이 여기셨던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갔다 오면 조
용히 불러 귓속말로 "찬장 속 비밀 창고에 굴비 고사리와 미제 사탕
을 숨겨 놨다"고 속삭이곤 하셨고, 나는 부리나케 찬장으로 달려가 보
물찾기 하는 심정으로 음식을 찾아냈다.
내게 음식이 그리움이자 설렘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왜 나는 배우인데 정작 연기는 하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에 목숨을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도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라는 케케묵은 교과서적인 대답을 겨우 찾았을 따름이다.
왕성한 식욕에 식탐까지 옹골찼던 언니, 오빠들의 등쌀에 행여 막내
딸이 배를 곯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항상 몰래몰래 음식을 내놓던
화순 씨의 마음이 바로 지금 내가 요리를 하는 뜻과 한가지로 통한다.
막내딸이 음식을 탐하는 모습마저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어
머니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나 역시 여경래 셰
프가, 현석이가, 미카엘이, 또 다는 누군가가 내가 만
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두둑해지는
느낌이다.
못내 안타까운 사실은 이제 막내딸이 만든 음식을 평가해줄 어머
니가 계시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화순 씨
에게 대접할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본다. 그리고 내가 직접 요리한 음
식을이 놓인 상 한편에 어머니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요리가 여기까
지 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앞으로도 난 항상 누군가에게 음식을 퍼줄 거다. 김치, 게장,육전,
닭볶음탕·····.내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면 난 언제든 앞치마 끈을 질
끈 동여맬 것이다.
아깝지 않느냐고? 힘들지 않느냐고? 천만에! 내 마음을 엿보고 싶
다면 지금 여러분도 직접 음식을 만들어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대접
해보라.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풍성해짐을 느낄 것이다.
부디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의 사랑이 한층 깊어지길 바라본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준 구수한 강된장을 쌀밥에 쓱쓱 비빈
후 갓 구운 박대 한 조각을 얹어 먹었던 행복한 기억이 떠오르는 밤
이다.
_ 엄니 곁으로 다가가는 나이에
사랑스러운 막내딸 김수미
내가 살던 고향
군산은
산란기가 다가오면 자신이 살던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모습
을 보고 있노라면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심코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이 귓가에 파고들어 심금을 울리는
것마냥 그 이름만으로도 해묵은 감정선을 툭 하고 터트릴 것만 같은
이름, 내 고향 군산은 늘 그리움이고 간정함이었지.
비록 동네 곳곳에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새겨진 낡은 건물들이
즐비한 탓에 쓸쓸함과 애잔함이 교차하는 마을일지라도 내게 단 하나
뿐인 소중한 고향이라는 사실은 변하는 게 아니잖아.
비쩍 마른 내가 50년 팍팍한 서울살이를 꿋꿋이 버텨낼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고향에서 보낸 어린 서절 덕분이 아닐까?
여린 잎이 파릇파릇 올라오는 청유월이 다가와 앞산에는 뻐꾸기
울음 구성지고, 분홍 진달래로 온 산이 벌겋게 익을 무렵이 되면 그게
다 내 놀이터고 정원이었지.
작약꽃 흐드러진 앞마당에 여름이 막 피어오를 때면 울타리 주변
은 해바라기가 빙 둘러 서고, 마루 끝에서 지붕으로 연결한 철사를 타
고 오르는 나팔꽃이 활짝 피어났어.
엄니는 계절마다 피는 꽃을 골고루 심었기 때문에 우리 집은 봄부
터 가을까지 끊임없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꽃의 정원이었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누구보다 통이 크고 배짱이 좋아 때로는
'간덩이가 부은 것 같다'는 평가를 듣는 것도 아마 어린 시절 수천만
평이나 되는 넓은 정원에서 마음껏 뛰어놀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
게 돼.
특히 옥수수 밭 중턱 소나무에 아버지가 대놓은 그네를 타며 꿈을
품었고 그 품은 꿈이 자라나 숲이 되었던 거야. 칡뿌리 캐 먹고, 삐미
뽑아 먹고, 찔레꽃 순 꺽어 먹고, 머루며, 홍시 등 순도 100% 무공해
신토불이 음식은 작고 마른 체구지만 단단한 강단을 갖게 해 주었어.
어느 지역이건 그 고장이 자랑하는 향토음식이 한둘쯤은 있기 마
련이잖아. 하물며 곡창지대가 인접해 있어 일찍이 먹을거리가 발달한
전라도야 말해 무엇 하겠어.
조기 철이 가면 꽃게 철이 오고, 고추장에 박은 굴비 장아찌가 분식
집 반찬으로 나오는 곳, 동네 백반집에서 오천 원짜리 한 장이면 그럴
싸한 한정식 한상 제대로 대접받는 게 바로 내 고향 군산이 있는 전라
도야. 그곳이 내 고향이니 나 역시 음식을 해서 퍼 주고, 퍼 먹이는 것
을 좋아할 수밖에. 나 김수미는 전라도의 근성이 DNA에 새겨진 여
자!
어릴 때 밭농사만 짓던 우리 집은 보릿고개가 오면 누군가와 나눠
먹을 형편은 아니었지만 이웃의 불행을 나 몰라라 하지 않았어. 거지
건 장사꾼이건, 배고프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시래기죽이라도 밥
상을 차려내곤 했거든. 그런 집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어느 날 입덧이
심한 후배가 이러는 거야.
"선배님 갓김치 한 쪽만 먹으면 가라앉을 것 같아요."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팔뚝만 한 여수 돌산 갓김치가 들어 있는 김
치통을 헐어 맛있는 놈들로만 골라 한 통을 보내줬지. 물론 그 후배와
어릴 적 우리 집을 찾아오던 객들이 같은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음식 인심이 박하지 않은 것은 부모님이나 나나 마찬가지인 듯해.
50년 서울살이를 하는 사이 내 입맛도, 솜씨도 조금은 변했을 거야.
시어머니의 편달도 있었고, 남편의 서울 입맛에도 장단을 맞춰야 했
지. 하지만 난 아직도 음식 간을 볼 때에는 우리 집 일을 도와주시는
전라도 출신 아주머니에게 최종 확인을 받아. 그녀의 혀에 달라붙어
있는 '전라도의 간'을 믿기 때문이지.
그래, 내게 고향은 언제나 그리운 곳이야.
책의 첫 소개는 여기 까지 합니다.
다음 포스팅은 수미네 반찬의 레시피를 올려 볼께요 ^^